동화성세무서 민원실장으로 근무하셨던 국세청 동료분이 민원인을 상대하다 쓰려저 결국 지난 16일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1. 세무서 민원실의 고충과 애환
지방청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점은 직원분들이 정도 많고 성실하다는 점입니다. 로펌에 있을 때도 나름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서 나쁘지 않다고 여겼는데, 거기도 인성이 이상한 사람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에 와보니 다들 인성까지 좋아서 이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튼 저는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으샤으샤하는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근무환경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작은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입사 후 직원분들에게 제 감상을 이야기 했더니, 웃으시면서 이야기 해주더군요. ‘세무서 민원실에 있다 지방청 오면 사람 대하는 게 그렇게 너그러워진다. 민원인(특히 악성민원인) 상대는 정말 힘들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까지 말씀하실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 몇 년간 악성 민원인 문제가 공공, 민간부문 가리지 않고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직원분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 그날 동화성세무서에서 벌어진 일
국세청은 물론 다른 행정기관 민원업무로 공무원분들이 악성 민원인의 물리적, 언어적, 정서적 폭력으로 큰 고충을 겪고 있고, 내부적으로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7월 24일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에 한 중년 여성 민원인이 찾아옵니다. 이 여성은 부동산 관련 서류를 발급받고 싶어했으나 구비 서류를 챙겨오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민원실 직원이 발급 불가하다는 안내를 했으나 이 여성은 계속 발급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이러다 이 여성은 고성을 지르며 선을 넘기 시작합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먼 이 고성은 약 10분 간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느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민원실장이 개입하여 그 여성을 상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단독] 동화성세무서 민원실의 ‘그날’…119 최초 신고자 “팀장이 쓰러졌는데도 민원인은 쳐다보기만””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민원실장은 다리에 장애를 가진 분이었는데, 그 여성은 민원실장의 장애를 언급하기도 하면서 계속 고성을 지르고 따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민원실장이 쓰러졌습니다. 민원실 직원들과 주변 민원인들이 119에 신고하고 후속 조치를 하는 동안 그 여성은 ’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뻣뻣하게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화선세무서 민원실장은 의식불명상태에 빠져 병원에 있다가 결국 의식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전국 133개 세무서 민원실 중 2위 업무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성실했던 분이었습니다.
남편분의 인터뷰가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도 지금 위암 4기거든요. 힘든 싸움이 될 건 알지만, 형사 고소하고 민사 소송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당 민원인) 연락처도 알 수 없고, 사과라도 듣고 싶은데 법적으로 다 막혀 있잖아요. 사과조차 못 받은 상태에서 저렇게 보내야 된다는 게 참 너무 억울하죠."
"힘든 민원실 업무에도 힘든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던 아내였다"
"아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그랬다"
3.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줄 안다"
영화 사생결단의 명대사입니다. 90년대 이후 행정기관들은 앞다투어 대민 행정을 민원인 친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과거 고압적이었던 행정권력을 반성하고, 변화된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행정도 서비스라는 인식 하에 말이죠. 그게 몇 십년 지난 지금, 이제 상황은 반대로 변했습니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언론, SNS가 발달하면서 이젠 더 이상 민원인도 마냥 약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서이초 사건이 떠오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호의가 계속되자 권리인줄 알고 이를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개별 인간성의 한계를 탓할 수도 있지만 결국 문제는 제재 또는 처벌 가능성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법적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공포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대응(현장대응 및 사후 형사고발)이 당연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로스쿨 때 헌법 명예교수님 강연에서 들은 '자유의 한계'에 대한 인용문으로 마치겠습니다.
"당신이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다른 사람의 코앞에서 끝난다" (미국 연방대법관판서인 올리버 웬델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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